북한은 '적국' 미국에서 열리는 2028 LA 올림픽에 참가할까?

LA 메모리얼 콜리세움 경기장

사진 출처, Getty Images

  • 기자, 한상미
  • 기자, BBC 코리아

제33회 파리 하계 올림픽 폐막식에 미국 헐리웃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배우 ‘톰 크루즈’가 깜짝 등장했다.

오륜기가 다음 개최지인 미국 로스엔젤레스(LA)의 캐런 배스 시장에게 전달되고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자 하늘에서 와이어줄을 타고 내려온 톰 크루즈는 멋지게 바이크를 타고 내달렸고 이어 영상 속 미국 상공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린 뒤 LA의 상징인 HOLLYWOOD 사인 앞에 당당하게 선 그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있던 북한 선수단은 이 영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북한에서 ‘미 제국주의 승냥이’라 배웠는데 실제 톰 크루즈를 보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보다시피 다음 올림픽 개최지는 '원쑤'인 미국, 그것도 풍요로움과 활기찬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무한한 기회가 공존한다는 LA인데 북한은 자유 시장경제의 근간이자 ‘적국’인 미국에 선뜻 자국 선수단을 보낼 수 있을까?

2024 파리 올림픽 폐막식에서 인공기를 흔드는 북한 선수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2024년 8월 11일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2024년 파리 올림픽 폐막식을 위해 북한 기수들이 걸어가고 있다

북한, 3번의 올림픽 보이콧

북한은 1972년 올림픽 무대 공식 데뷔 이후 총 3번의 보이콧을 했다. 첫 번째 불참은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었는데 이는 앞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의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에 대한 복수 개념이었다. 그렇게 북한은 당시 소련과 공산권의 LA 올림픽 보이콧에 동조해 미국 땅을 밟지 않았다.

두 번째는 1988 서울 올림픽으로 당시는 남북관계가 좋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한국의 올림픽 개최 유치에 훼방을 놓을 정도로 남북간 체제 경쟁 및 외교 전쟁이 치열했다. 한국의 서울 올림픽 개최에 대응해 북한은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성대하게 열었다.

세 번째 불참은 바로 2020 도쿄 올림픽이었다. 물론 북한의 공식적인 불참 사유는 코로나19 였지만 이로 인해 북한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까지 출전 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북한의 올림픽 보이콧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개최지가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이었다. 모두 북한의 ‘적국’이다. 실제로 북한은 미국과 일본을 상종 못할 나라로 치부하고 있으며 지난해 연말에는 한국을 겨냥해 ‘2국가 체제’를 선언했다.

북한 620 훈련소 선전대 작가 출신의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BBC에 “북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미국은 조선반도를 침략하러 온 침략자, 일본은 식민 제국주의의 본산지라고 배운다”며 “원칙적으로는 미국이나 일본에는 선수단을 안 보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무리 선수단이 젊은 장마당 세대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나고 자란 만큼 북한의 환경에 지배를 안 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우리가 볼 때는 프랑스나 미국이 당연히 더 좋아보이겠지만 북한 사람들이 볼 때도 과연 그럴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 북한 축구 대표팀이 한국에 경기를 하러 왔을 당시 북한 선수들이 머문 서울의 한 호텔은 인터넷을 다 끊었다는 얘기를 경찰 관계자로부터 들었다”며 “그만큼 감시도 철저하기 때문에 북한 선수들이 미국에 가더라도 그곳의 자유를 느끼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북한은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는 출전했다. 미 본토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처음으로 인공기를 휘날린 것. 북한은 처음에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이후 올림픽 개막이 가까워지면서 막판에 합류를 결정했다. 이는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의 고립을 피하고 자국 선수들에게 국제대회 참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당시 북한 선수단은 2개의 은메달과 2개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향후 국제정세 지켜봐야’

2024년 6월 20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이 사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아우루스 승용차를 타고 있다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자유주의와 수정주의 진영 간의 경쟁이 극으로 치닫거나 특정 국가의 돌출 행동이 유발될 경우 올림픽 보이콧이 나타날 수도 있다

최근에는 IOC나 FIFA(국제축구연맹) 등이 주최하는 국제 경기에 특정 국가가 정치적 이유로 완전 불참하는 경우는 드물다. 냉전이 종식된 지 한참이 지났고 하물며 국가 차원에서 도핑 문제가 불거지면 개인 자격으로도 출전할 수 있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다만, IOC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이를 도운 벨라루스의 2024 파리 올림픽 출전 자격을 정지한 바 있다.

하지만 향후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이 문제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자유주의와 수정주의 진영 간의 경쟁이 극으로 치닫거나 특정 국가의 돌출 행동이 유발될 경우 올림픽 보이콧이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은 “미북대화가 또다시 성사된다 하더라도 북한이 주장하는 군축 협상이 틀어진다면 양국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이럴 경우 북한이 LA 올림픽을 보이콧 하면서 행사 자체를 파토내려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러시아’라는 변수도 있다며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계속 악화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초장기적 교착 국면에 빠질 경우 북한과 러시아 입장에서는 미국이 주최하는 올림픽에 도움을 주러 갈 이유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역시 “지금처럼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고 북러 군사밀착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변수가 작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다만 “지금 타진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4년 뒤의 일이니 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서도 트럼프?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 중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오는 11월 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느냐에 따라 북한의 LA 올림픽 참가 여부가 확실해질 수 있다

이 문제에서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오는 11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느냐에 따라 북한의 LA 올림픽 참가 여부가 확실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로서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그나마 핵 위협을 잠재우고 중국 견제에 나서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북한과 협상을 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김현욱 세종연구소장은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뒤 북미관계가 좋아지고 대북제재가 어느 정도 해제되고 그래서 북한의 경제 상황이 나아진다면 김정은 입장에서 선수단을 LA에 보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제재가 해제되고 경제가 좋아지면 바깥 세상에 대해 자연스레 알게 될 텐데 그러한 상황에서 LA에 가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 소장은 “결국 방법론의 차이”라며 “카멜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모두 북한 문제를 뒷전으로 본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트럼프 정부에서의 북미관계가 지금보다는 좋아질 가능성이 있고 그런 상황적인 변화가 이뤄진다면 북한이 LA 올림픽 참석도 긍정적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핵 문제가 진전되어 미북관계가 좋아진다면 LA 올림픽이 미북관계 정상화에 방점을 찍는 평화 올림픽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성윤 실장은 “그렇게 된다면 북한이 흔쾌히 선수단을 보낼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서 대국인 미국이 ‘적’이 아닌 ‘친구’가 되었다며 내부 선전하기에도 좋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대한 김정은 지도자 덕분에 따뜻하게 행복을 즐기며 자유를 만끽하는 국가가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미국과 자유 세계 입장에서도 가능하면 어떻게든 북한을 불러들이는 것이 정치적으로 편할 것”이라며 “만약 외부 정세나 내부 상황이 악화되어 북한이 LA 올림픽 불참을 선언한다면 스포츠 평화외교, 즉 2018 평창과는 또다른 버전으로 이제는 미국과 한국 등 동맹국들이 힘을 합쳐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 북한을 참석하게 만드는 그런 스포츠 외교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